– 추가사고 신뢰의 정의

 ‘신뢰의 정의’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구원받을 “신심”이란 삼위일체 신이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며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상을 통한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피가 흘러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시인하고),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신의 뜻대로 사는 것 “정의” – 네이버 : “신심의 단상” 정의 – 네이버 블로그 : “신심의 단상”

음의 정의에 대한 보충도를 그려보았다.

갈라진 가지로 구성된다. ‘생각의 부분’과 ‘삶의 부분’이다. 우선 우리의 생각이 변화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입으로도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둘째,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 것인가이다. 이 둘이 연합해야 구원받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만의 믿음으로는 구원이 완성될 수 없다. 이른바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이중적인 것으로서 상식적으로 봐도 그것을 어떻게 믿는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신앙일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의 사고에서 논리의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그러면 무슨 행위로 구원을 받느냐는, 하느님 생각대로 살 수 없도록 혼란을 일으키는 얄미운 교회 내의 논쟁인데 그 상반된 개념으로 본지를 현혹시켜서는 안 된다. 이 블로그의 글 구원은 쉬운가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 믿을 때 우리의 어떤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그러나 인생의 과정이 문제다. 쉽게 말해 구원받았다면서 살아 있는 동안 신의 뜻에 반하는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회개가 도움이 되는 만큼 회개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여

기서교회의 교리적인 가르침의 문제는 바로 이 삶의 부분을 제외하고 바울의 사도들이 말한 로마서의 말(신뢰의 정의문에서 인용한 10:9-10)만을 기초로 하여 생각의 부분으로만 구원된 것으로 각인(즉 이에 구원의 확신을 부여)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 부분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해야 하는 것은 사실 인간적 사고의 관점에서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다만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는 은혜의 시대라는 명분을 주고 축복받는 선택적 조건인 것처럼 호도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교회의 태동기인 옛부터 인간의 모순된 논리와 사고를 공략하여 사람들이 받아들이는데 그런 식의 방법을 조장하여 결국 사람들에게 그것도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게 하여 구원받지 못하게 한다(이래야만 확실히 멸망의 길을 가도록 고정시킬 수 있다) 매우 교활한 마귀의 궤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하여 교회의 가르침(교리)의 근본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오히려 사람들에게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독이므로 믿는 사람이나 실제 삶에서는 별 죄가 뭔지도 모르고 죄를 짓고 살아가면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믿는다는 사람이 무언가 죄가 표명될 때는 신의 십계명 중 제3계명이 결합돼 신의 이름에 부끄러움을 주는 뼈아픈 죄를 가중시키게 된다. 특히 오늘날 사회에서 교회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원인이 되는 부분이다. 육안적 교회라는 곳이 이렇게 숨어 있는 비밀의 독을 가지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좁은 길, 즉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 속에 진실한 신앙으로 승화된 신자들은 이런 교회 속에서도 스스로 분별하고 진실한 신앙을 깨닫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고만의 신앙이 아니라 삶 자체가 신앙이 되는 순수함을 갖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처롭게 황야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 불순종 백성은 한 사람도 들어올 수 없었고 다만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들어갔다. 이는 불순종하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출애굴한 이스라엘 백성은 일단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천국을 예언한다는 가나 안에 모두 들어갈 수 없었다. 오늘날 예수 이후 교회에 사람들, 즉 그래도 신의 하인을 받은 일단의 신도들에게 이 역사가 교훈을 준다. 다시 말해 교회를 나가는 신자가 모두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성도가 하늘나라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태복음 7:21절의 말씀을 구원의 기초이자 신앙의 정의로 삼는 근본적 변혁이 요구되며,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은 당연하나, 그 믿음이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나에게 주려는 자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그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겠다.(마태복음 7:21)